환벽당
광주북구 충효동에 있는 환벽당 .
무등산 끝에 붙어있는. 담양가사 문학관을바로 코앞에 두고있는 이곳에는 환벽당과 취가정이 경계를 이루고 있다 . 어느때는 담양땅, 어느때는 광주 땅이 돼어 시대에 따라다니는 지역이라고 봐야할지.....
지방 기념물 제1호,
우리는 제1호는 알아야 할것이다
국보 1호, 천연기념물 1호, 지방문화재 1호, 보물 1호, 1호라는것은 알고있는것도 나쁘지는 않을것 같다. 모두를 알려면 머리 아프니까 하나 만이라도.....
가사 문학의 산실인 담양과 근접해 있는 관계로 이곳에도 가사 문학이 숨쉬고 있는 자리다
양산보, 송강정철, 김윤제, 고경명, 서하당 등등 여러 문인 풍류객들이 머물렀던 곳이라 이곳에서도 그 풍류객들은 함께 기거하며 학문을 배우고 익혔다
원효계곡의 물이 광주호로 들어오는 입구 창계천 가ㅡ이 충효동에 자리잡은 환벽당은 사촌 김윤제가 창건한 살림집이다. 지금은 허름한 건물만 하나있지만, 터는 굉장히 넓어 원래는 굉장히 큰집터였음을 알수있다. 크나큰 목련나무도있고 오동나무도오래된 시간이 흘렀음을 알수있는 것들이 곳곳에 눈에 띄인다
환벽당 아래에는 사촌과 송강이 처음 만났다는 전설이 깃든 조대와 용소가있고 창계천 건너에 식영정이있다. 바로 옆에는 취가정이 있으며 동쪽으로 1키로쯤에 소쇄원이있고, 조금더 남면쪽으로 들어가면
독수정이 있어 조선조 중기 원림문화의 중심을 이루고 있다
환벽당의 다른이름이 있는데, 벽간당이라고도 하고, 벽간당은 가까운곳에 있던 사촌의 별장인데 지금은 없어졌다고 한다. 환벽당은 "푸르름으로 둘러싸인집" 이라는 뜻이다
환벽당은 송강정철이 14세의소년 시절부터 27세에 등과하여 관직에 나아갈때까지 공부하던곳으로 더 유명하다 사촌과 송강이 처음 만나던 극적인 전설이 전해지고있다
"'송강의 부친 정유심이 을사사화에 연루되어 귀양살이를 치르고 풀려난뒤 처가가 있는 창평으로
낙향한 것이 인연이 되어 만나게 된다. 당시 송강은 현재의 고서면 원강리에 머물렀는데,
그의 형 소가 순천의 처가에 의탁하고 있었으므로, 형을 찾아가던 길에 날씨가 더워 환벽당 아래 용소에
이르러 훌떡벗고 목욕을 하고있었다. 이때 사촌 김윤제가 낮잠을 자는데, 용소에서 용이 하늘로 치송아 올라가는 꿈을 꾸자, 깜짝놀라 깨어 급히 가보니 어린 소년이 목욕을 하는것이 아니가! 사촌은 그 소년을 데려다가 제자를 삼고 가르쳤는데, 그가 바로 송강 정철이었다. 사촌은 그의 외 손녀를 송강에게 출가 시켰고, 송강이 관계에 정착할때까지 뒷바라지를 아끼지 않았다, 그런데 송강의 어머니가 서하당의 인척이고 서하당은 사촌의 조카이므로 그들의 만남은 우연이라기 보다 자연스러운 일이었을것이지만
이처럼 자연스런 조화로 인하여 더 멋진 시와 글을 읊었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