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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 올해만의 여행길에서..

smile⌒∇⌒ 2007. 6. 5. 22:15

*소쇄원 광풍각

*창평 남극루에서

*소쇄원

*마삭 의 향기에 취해서..

*미암 유희춘의 14대손의 설명

*보관돼어있는 미암일기

*미암일기 문집목판

*미암일기가 보관돼어있는 보관소 모현각(주위가 연꽃 방죽임)

*면앙정  삼헌가

 

 

시민문화회의에서 답사일정이있어 모처럼만의 외출을 시도했다

답사라는것은 정말 즐겁다 내가 모르는것을, 우리 문화라는것을 접할땐 남다른 감회까지......

문화예술회관주차장에 도착해서 버스를기다렸지만 약간 시간이 늦은것같아 여러사람들과 담소를나누며 잠시 시간의 여유를 즐겼다

코리안 타임인지 예정시간보다 늦은시간에 도착해서 빠르게 그곳을 떠났다 오늘의 일정과함께 소개된것은 간단히 시간의 여유를 즐기며 자연속으로 들어가서 한가로움과 여유를 만끽하자고 편하게 자리를 잡아 주었다

 목적지중 소쇄원에 도착해서  천득염 교수님과 함께 소쇄원에 대헤 자세한 설명과 소쇄원도에 대해 세심한 곳까지 설명을 해주시어 모두들 귀를 쫑긋하고 듣고 계신다 모두들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는다

그중 연세드신분들이 몇분 계셨는데 그분들은 젊운이 보다 더 열심히 듣고 질문도 많으시다 그렇게 관심이 많으신 모양이다

고서 명옥헌을 들러 아직 피지 않는 백일홍의 푸르름을 보며, 주위의 풍광을 마음속에 새겨넣고

후산리 은행나무를 둘러본후 창평 남극루, 창평국밥, 대덕 미암일기까지 계속 행진하였다

내가 가본곳들이, 아니 모든 관람객들이 지금까지의 코스는 많이 가본 코스였다

그러나 나에게 촛점이 꼿힌곳은 미암일기였다

여러곳을 가 봤지만 미암일기는 깊이 생각해 본적이 없었다, 관심밖의 인물이었다

 창평을 지나 대덕면입구에서 미암일기의 안내표지판을보고 약 1키로쯤 들어갔을까~~

막다른 길에 넓은 주차장이 있어 차에서 내렸다 앞에 펼쳐진 광경은 동네 저수지 같기도 하고 잘 정리된 어느 관사 같기도 했다

처음 와 본 곳이라 딱히 알수있는 방법이 없었다

일행중 전대 문화전문대학원에서 강의를하신다는 분이 계셔서 모두들 해설을 듣고자 요청해 들을수있었다

유희춘은 그렇게 널리 알려진 인물은 아니라고 한다

미암일기는 조선 선조 때의 학자인 유 희춘 (1513~1577)선생이 직접쓴일기라고 한다

유희춘은 1513년 해남현 해리의 외가에서 태어났는데,어릴적부터 영리하여글 읽기를 좋아해서

1538년 과거에 급제한후 홍문관 수찬, 무장 현감으로 지냈다.

하지만 양재역 벼ㅕㄱ서 사건에 연루되어 제주도로 유배되었다가 그곳은 고향인 해남과 가깝다고 다시 먼 변방인 함경도 종성으로 이배되었다

20여년의 유배생활에서도 책읽기를 게을리 하지 않고 [속몽구와 육서부록]이란 두권의 책을 편찬하였다그 결과 선조가 즉위하자 학문이 해박하다하여 유배에서 풀려나고 정 5품 홍문관 교리에 제수되어 경연관으로 임금한테 글을 받치도록 허락했다그후 임금님의 두터운 신임을 받았다

한편 그의 부인은 담양에서 홍주송씨로 천성이 명민하고 경서와 사서를 두루 섭렵하여 여성선비로서의 풍모가 있었다고 한다 그는 16세기 여성지식인처럼 평생동안 한시를 써서 [덕봉집]이란 시집을 남겼다

그래서 그는 신사임당의 뒤를잇는 인물로 새롭게 주목하고잇다고한다

미암일기는 위로 조정의 정치사로부터 아래로 집안의 대소사및 개인의 신변잡기에 이르기까지 11년여 동안 저자가 서울과 고향을 오거면서 겪은 경험담이 그야말로 적나라하게 실려있다고 한다.

심지어는 목욕과 화장실, 성욕, 성병끼자도 솔직하게 기록되어있는데 바로 이런점들이 미암일기의 역사적 가치가 뛰어나다고 할수있을것 같다

미암은 부인 송덕봉에 관한 사실도 적잖게 기록해 두었는데 음식과 의복, 수발을 비롯한 각종 집안살림을 주관하는 모습, 부녀모임과 바깥구경 및 창작활동 같은 다양한 여가를 즐기는 모습등을 기록해

지금까지의 다른내용보다 사실적인 생활사들이 자세히 기록된것이라고 한다

현재 모현관 안에는 미암의 친필일기와  목판등 12책이  보관돼어있으며  담양군 보물 제 260호로 지정돼어 있고, 유희춘의 13대와 14대 손이 그곳에 살며 미암사당을 그 집안에 모시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