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조의 경제개혁과 ‘기업하기 좋은 나라’
김 태 희(다산연구소 기획실장)
독점은 어느 시대건 자유롭고 공정한 경쟁을 저해한다. 시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이른바 ‘시장실패’를 초래한다. 정조 시대에도 이런 문제가 있었다. 특권상인에 의한 유통의 독과점이 그것이다. 이런 독과점을 없애려는 노력이 있었지만 큰 상인들의 반발과 이에 대한 정치 권력자들의 비호로 번번이 실효를 거두지 못했다.
이에 정조가 개혁추진을 위해 특별히 기용한 인물인 좌의정 채제공이 나섰다.
“도성에 사는 백성의 고통으로 말한다면 도거리 장사가 가장 심합니다. … 크게는 말이나 배에 실은 물건부터 작게는 머리에 이고 손에 든 물건까지 길목에서 사람을 기다렸다가 싼값으로 억지로 사는데, 만약 물건 주인이 응하지 않으면 곧 난전(亂廛)이라 부르면서 결박하여 형조와 한성부에 잡아넣습니다. 이 때문에 물건을 가진 사람들이 간혹 본전도 되지 않는 값에 어쩔 수 없이 눈물을 흘리며 팔아버리게 됩니다. 이에 제각기 가게를 벌여 놓고 배나 되는 값을 받는데, 평민들이 사지 않으면 그만이지만 만약 부득이 사지 않을 수 없는 경우에 처한 사람은 그 가게를 두고서 다른 곳에서 물건을 살 수가 없습니다. 이 때문에 그 값이 나날이 올라 물건 값이 비싸기가 신이 젊었을 때에 비해 3배 또는 5배나 됩니다.”(정조실록 15/1/25)
통공조치, 다함께 장사할 수 있도록
당시 등록된 시전상인에게는 ‘금난전권(禁難廛權)’이 주어져 있었다. 육의전을 비롯한 시전상인들에게 나라에서 필요한 물품을 조달하도록 하고 대신 서울 도성 안과 성 밖 십리 안에서 자신들이 취급하는 상품을 독점적으로 판매할 수 있는 특권을 준 것이다. 이로써 다른 중소상인들의 상업 활동을 ‘난전’이라 하여 못하게 하고 그들의 물건을 싼값으로 구매했다. 그리고는 필요한 사람에게는 비싸게 팔아 폭리를 취했다. 기존의 큰 상인과 이와 결탁한 노론 권세가가 이익을 보고, 중소상인과 백성들이 불이익을 입는 구조였다.
‘금난전권’은 18세기 새로운 상품경제의 성장을 저해하는 걸림돌이었다. 개혁정치의 분위기가 조성된 정조 재위 15년, 채제공이 통공화매를 건의하고 정조가 이를 받아들였다. 통공화매(通共和賣)란 ‘생산자와 소비자가 서로 통하고 함께 장사할 수 있는 것’을 뜻한다. 말하자면 ‘장사하기 좋은 나라’이다. 이것이 바로 정조의 경제개혁조치, 신해통공(辛亥通共: 1791)이다. 정약용에 의하면, 통공조치 후 1년 정도 지나니 물가는 내려 안정되고 물자는 풍족해졌다고 한다.
독점의 폐해는 오늘날도 마찬가지로 시장질서와 기업환경을 왜곡한다. 독점규제를 통해 자유롭고 공정한 시장질서를 유지하는 것은 정부의 과제가 되었다. 선진자본주의 미국의 자본주의사는 독점규제의 역사이기도 하다.
우리나라도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을 제정해 운영하고 있다. 시장지배적 지위의 남용과 불공정거래행위 등을 규제하여 ‘공정하고 자유로운 경쟁’을 촉진하기 위한 것이다. 그럼으로써 결국 요즘 말하는 ‘기업하기 좋은 나라’와 소비자 보호, 아울러 국민경제의 균형 있는 발전을 꾀하기 위한 것이다.
중소기업도 함께 기업하기 좋은 나라를
그런데 최근 모든 규제를 싸잡아서 오로지 규제만 풀면 기업하기 좋게 되는 것처럼 말하고 있다. 97년 외환위기와 2002년 신용카드대란, 그리고 최근 미국경제를 뒤흔든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사태는 모두 다 감독이나 규제를 소홀히 해서 생긴 것이 아니던가? ‘기업하기 좋은 나라’를 위해서 완화하고 폐지해야할 규제가 있는가 하면 더더욱 존치해야할 규제가 있다.
더욱이 요즘의 규제 완화나 ‘기업하기 좋은 나라’는 재벌 대기업만 배려하는 경향이다. 가령 ‘출자총액제한제도’를 폐지하고 ‘금산분리 원칙’을 완화하려고 한다. 새 정부의 공약이었던 ‘(대기업의) 불공정 하도급거래의 징벌적 배상제도’는 인수위의 국정과제에서 슬그머니 빠졌다.
정조의 신해통공 정신을 오늘에 살린다면, 대기업만이 아니라 모두 함께 기업하기 좋은 나라, 그래서 생업에 종사하는 국민이 더 많아지고 소비자인 일반 국민의 후생이 높아지는 나라일 것이다. 그렇다면 대기업 편향을 벗어나 중소기업들도 열심히 해볼 만한 여건을 조성하는 것이 ‘기업하기 좋은 나라’의 요점이 아닐까. 정조의 개혁정치에는 환호하면서, 이를 거부하는 노론 권세가(?)를 따를 것인가.
글쓴이 / 김태희
· 다산연구소 기획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