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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가두고 박제할순없어 개방하되 관리를 잘해야)

smile⌒∇⌒ 2008. 3. 4. 12:18

 

문화재는 대중 가까이 있어야 한다


                                                     김 민 환(고려대 언론대학원 원장)

50년대에 서울에서 학교를 다닌 분들은 덕수궁 연못에서 겨울에 스케이트를 지친 이야기를 한다. 60년대에도 겨울에 덕수궁 연못을 개방했는지 알 수 없지만, 60년대 학번들은 덕수궁에서 열리곤 하던 국전(國展)의 추억을 잊지 못한다. 대한민국 미술전람회의 약자인 국전은 그 시절에는 정부가 주최하는 가장 권위 있는 미술 전람회였다. 스케이트를 지친 50년대 대학생은 썰매를 타는 사람들 사이를 누비며 스케이트로 뽐을 냈겠지만, 60년대에는 국전 관람에 예쁜 여대생을 동반하는 것으로 폼을 잡았다.

60년대에 봄이 되면 창경원은 벚꽃놀이로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지금도 벚꽃놀이야 인기지만 그 때는 궁 안에 동물원이 있어 희귀한 여러 동물을 구경하는 재미까지 곁들일 수 있었다. 우리 고궁에다 동물원을 짓고 벚나무를 심은 일제의 몰지각에는 혀를 내두르지 않을 수 없다. 그걸 다른 데로 옮긴 건 당연하다. 그러나 동물원을 대중에게 개방하게 해 그들을 궁으로 불러 모은 순종의 발상 자체는 범상(凡常)의 차원을 넘은 것이다.

시대에 따른 기억과 함께 살아있는 문화유적지

나는 지난 해 어느 날 우연히 경희궁에 들렀다가 좋은 구경을 한 적이 있다. 태권도를 하는 분들이 경기시범을 보이면서 아울러 국악까지 들려주었는데 궁정에서 우리 고유의 운동이나 음악을 접할 수 있어 좋았다. 그곳에서는 주말이면 마당극도 열리고 때로는 수준급의 뮤지컬도 공연한다. 그 뜰에 모인 오늘의 젊은이들은 뒷날 고궁에서 본 뮤지컬을 기억할 것이다.

문화재나 유적이란 대중의 접근이 용이해야 되살아난다. 아무리 유적을 보존하는 일이 중요하다 하더라도 그것이 오늘을 사는 대중과 유리된다면, 밀폐된 공간에 가둬놓고 보존에만 전전긍긍한다면, 그것은 하나의 박제에 지나지 않는다. 그건 역사를 가둬두는 일이다. 유적은 개방하되 관리를 잘 하면 된다.

그런 의미에서, 덕수궁에 다시 스케이트장을 개설하는 것은 어떨까? 서울시청 앞 광장에 스케이트장을 만들었는데 거기보다야 덕수궁 안이 백번 나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경희궁이 아닌 경복궁 뜰에서도 마당극을 열게 해야 한다. 근정전 앞에서 옛 임금을 빗대 오늘의 대통령을 신랄하게 비꼬는 마당극이 펼쳐지는 건 상상만 해도 즐겁다. 물론 <왕의 남자>에게 줄타기를 하게 해도 좋을 것이다.

태조 때부터 보제루(普濟樓)에서 봄에 기로연(耆老宴)을 열었다고 들은 적이 있다. 해마다 70세가 넘은 노인들을 불러 모아 국왕이 연회를 베풀었다는 것이다. 이제 세상이 바뀌었으니 노인을 위한 연회는 물론 어린이잔치나 성인잔치도 옛 식을 살려 고궁에서 벌이고 그걸 개방한다면 의미도 있으려니와 괜찮은 관광 상품이 될 것 같기도 하다. 고궁을 관리들한테 맡겨놓으니까 그렇지 그걸 잘 활용한다면 아마 뜻도 있고 재미도 있는 일을 벌여 떼돈을 벌 수 있을 것이다.

가두고 박제할 순 없어, 개방하되 관리를 잘 해야

남대문이 불에 탔다. 이 일로 괜찮은 청장이던 유홍준 교수가 임기 며칠을 채우지 못하고 물러났다. 그는 학교에 돌아가서도 한 동안 얼굴을 들 수 없을지 모른다. 서울시장으로 재직할 때 그 문을 개방했다하여 이명박 대통령에게도 비난의 화살을 쏘아대고 있다. 그 책임 소재가 어디 있는지는 두고두고 가려야겠지만, 그러나 이 일이 터졌다고 해서 대중이 유적에 접근하는 것 자체를 막는 행정이 이루어져서는 안 된다.

내가 남대문이 불에 탔다는 소식을 들은 곳은 시드니였다. 여행 중에 그 소식을 듣고, 그리고 불이 붙은 남대문의 화려한 단청과 불에 타고 남은 시커먼 잔해 사진을 대문짝만 하게 대비한 현지 신문을 보고, 나는 한국인임이 부끄러웠다. 유적이 불에 탔다고 해서 유적을 박제품으로 만든다면, 유적을 대중으로부터 유리시키려 한다면, 우리나라는 다시 한 번 조롱당할 것이다. 유적은 대중 가까이에 있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