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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며느리의 역할은 중요하다.

smile⌒∇⌒ 2009. 9. 20. 17:29

 추거이 다가오니 옛날 생각이 나서 웃음이 난다 

 직장생활만 하다가 처음 결혼하여 추석을 맞이 하였다

4월에 결혼하여 9월에 추석을 맞이하였으니 어느정도 시댁 생활에 적응이 됐을법도 한데....

 광주에서 살고 있으면서 명절이 됐으니 당연 시골 시댁으로 명절 준비를 하러 가야할 새댁이

친정집으로 간다고 친정에 전화를했다

" 엄마 나 낼 갈께  내가  전부치고 할라니까 엄마 아무것도 하지말고 기다려"

하고 전화를 하니까

친정엄마왈" 그래라, 근디 너 시집간거여  그래서 시댁으로 가서 준비를 해야제 친정으로 온다고?시어머니가 오지말고 친정으로 가라고하시던?

그때서야 뒤늦게 알았다. 아치! 나는 시집간 몸이지 ! 하면서...

그렇게 처음에는 착각을 할때도 있었다.

 

그렇게 시작한 명절날 며느리 로써 할일들이 얼마나 많은지, 그래도 난 시어머니께서 함께 준비 해주셔서 어렵지 않았다.

큰며느리라서 모든식구들이 신경을 써주시면서 별 어려움 없이 명절이 다가오면 항상 시어머니와 함께 일을 해결해 나갔다.

우린 아들이 3명이다

둘째동서, 세째동서가들어오자 이제 서서히 시어머니는 음식준비에서 손을  떼셨다

이제 모두 나의 몫이었다,

 혼자서 모든것을 준비하고 만들고 하는 일이 처음에는 너무 힘들었지만, 여러번의 과정을 거치면서 차례대로 진행이 되어갔다.

그런 과정중에 어려운 것이 새로 들어온 동서들이  그냥 못한다는 것으로  살짝 넘어가려고했다.

 시어머니 말씀이 " 큰며느리가 알아서 동서들을 시키고 해야제 혼자 그것을 다해야, 그것은 안된다 한나씩 분배를 해라 하시며 며느리들을 앉혀놓고 말씀을 하셨다.

"니기 큰동서가 모든것을 다할수는 없응께 서로 도와가며 해야제 힘이 덜 든다. 못한다고만 하지말고 하나씩 배워서 다음 명절때는 해가지고 오던가 여기와서 함께 하던가 해라" 하시면서 다른 말씀은 없었다.

정말 그랬다. 입장이 난처하고 시키기가 미안했다. 직장생활하고 먼길하고 오느라 고생들 했는데 차라리 내가 하지 하면서 동서들을 쉬게 했다.

난 큰며느리지만 마음이 약했다. 동서들이 고생하는것을 보면 내 동생들이 고생하는것 같아 마음이 아팠다.

그래도 난 광주에서 가니까 멀지 않지만 서울에서 오면은 얼마나 힘든 시간인지 모른다.

 시집오기전 서울에서  시골에 명절이다고 내려올때  13시간 걸린 적이 있었다. 얼마나 힘들었는지 그날 이후 명절떄는 될수있으면 2~3일전에 내려오지 전날에는 전혀 움직이지 않았었다.

동서들도 아마  나처럼 그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암튼 큰며느리는 동서들에게도 친척들에게도 잘해야한다.

오랫만에 고향에 내려가면 다른 며느리는 안찾아도 큰며느리는 꼭 찾는다.

그러면 인사도 해야하고작은 선물이라도 준비해야하고....

 

명절 친척들의 방문에도 인사를 해야하기때문에 자리를 뜰수도 없고 편하게 누워있지도 못한다.

 어느 명절엔가 기억이 나는데  상을 오후 6시까지 얼마나 차렸는지 손가락으로 세고도 모자랐다

아마 결혼하고 얼마되지 않았을때인것 같다. 그날밤 어떻게 쓰러져 잤는지 다음날 일어나 보니 9시가 넘었던 적이 있었다.

 

이제 그런 시간들은 지났지만, 아 직도 동서들에게 윗사람으로써 어떻게 해야할까 생각에 잠길때 가 있다.

지금은 시부모님이 계시지만, 모두 안계실때는 내가 집안 살림을 해야한다며 시어머니는 항상 말씀 하시지만 과연 어떻게 해야 잘하는건지 아직도 정리는 안되지만  난 동서들에게 항상 편한 시간을 선택하라는 말 밖에 할말이 없다.

 동서들이 알아서 할수있도록, 옛날 처럼 판단력이 없는 사람들도 아니고  모두 이해력과 판단력 좋은 젊은 새대들이기때문에

난그들에게 모든 의견을  맡겨버릴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