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소리

[스크랩] 기획시리즈-우리동네 명물 이야기

smile⌒∇⌒ 2016. 1. 22. 17:21

선비들의 교유처였던 균산정(筠山亭)....

 

여름무더위를 식히기 위해 계곡을 찾고 시원한 나무 그늘을 찾아 광주근교를 싸돌아다녔다.

마침 눈에 띄는 아담한 정자가 눈에 들어왔다.

정자아래에는 석곡천이 흐르고, 정자 뒤에는 대나무 숲, 앞쪽에는 느티나무가 물가에서 시원한 자태로 유혹하고 있었다.

 

이곳은 청풍동 신촌마을 아랫동네 입구이다.

지금은 석곡천 보수공사가 한창 진행되고 있어 동네 입구가 어지럽혀져 있다.

광주에서 담양방향으로 달리다보면 오른쪽으로 제 4수원지 가는 표지판이 보인다.

표지판을 따라 경열사를 지나 약 1키로정도 달리면 입석에 신촌마을 이라고 씌어있다.

이표지석을 끼고 들어가면 마을초입에 균산정이 눈에 들어온다.

마을입구에는 당산나무가 2그루 보이고 동네 어르신들이 앉아 쉬고 계시는 쉼터가 있다.

이곳 인근마을은 오래된 나무들이 많다. 모두 마을의 역사를 이야기해주듯 당산제도 지내고 마을 사람들이 쉬면서 정담을 나눌 수 있는 장소로 마을에서 꼭 필요한 나무들이다.

시원한 석곡천과 아담한 정자를 앞에두고 이곳에 앉아 어르신들의 ‘균산정‘이야기를 들어보자.

 

신촌마을은 오래된 역사를 가지고 있다.남평 문씨 신제공파후손들이 집성촌을 이루었으나

현재 다른 성씨들과 함께 약 50 여 가구가 살고 있다.

남평문씨 신제공파후손들이 집성촌을 이루었던 흔적으로는 마을 뒷산 비암술산 자락에 자리잡은 균산정과 죽파재,사당, 괴양정, 서석단등에서 찾아볼수 있다. 사실, 이 정자의 건립 연대는 그리 오래 되지 않았다. 그러니까, 한말 때 이 마을 출신의 선비 해사 문인환(海史 文仁煥·1863~1930) 선생이 1921년에 건립했으니, 90여년 이쪽저쪽에 이른다. 균산정의 건립 정신은 조선시대 성리학의 대가였던 노사 기정진 선생의 문하에서 학문을 닦아 문명을 떨쳤던 균산 문용현(筠山 文龍鉉)의 유지를 받아 그의 아들인 해사 문인환이 건립했다

균산 문용현은 기로사(奇盧沙)의 제자로 죽파재(竹坡齎)라는 문각에서 많은 후학들을 배출한 당시의 처사(處士)였다.

 이곳은 문용현의 5대조 성재공 필상(惺齋公 弼尙·1671~1735)이 수헌(水軒)이라는 별당을 지어 학문을 연마하면서 많은 후학들을 가르쳤던 곳이었는데 오랜 세월이 지나 이 집이 무너지면서 황폐해졌다. 이를 애석하게 여긴 문용현이 그의 아들 인환에게 이 집의 복구를 당부 했었다.

그래서 해사 문인환( 海史文仁煥)이 아버지의 뜻을 이루려 하였으나 당시 사정이 여의치 않아 여러 해를 넘기고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36년 후에 이 정자를 지을 수 있었다. 그리고 정자의 이름을 그의 선친 균산의 호를 따라 ‘균산정’이라 하였고 이곳에 선비들이 모여 학문도 논하고 시를 읊으며 서로 교유하는 자리가 되기도 했다.

'균산(筠山)'이란 대나무의 살갗처럼 추운 겨울의 눈보라에도 그의 절개가 변치 않음을 뜻한다. 균(筠)은 대나무의 일종이기도 하지만 그것의 살을 보호하는 겉 살갗을 이르기도 한다

정자에 앉아 저 멀리 무등산 무돌길을 걷는 사람들의 무리들도 볼 수 있고 맑은 석곡천을 내려다보면서 시를 한수 읊어도 될 듯 싶다.

정자의 구조는 다른 정자와 다르게 정면 3칸, 측면 3칸, 네 개의 기둥이 별도로 건립되어 판자 마루로 되어있는 정사각형의 거실이 꾸며져 있고 그 위에 2층다락이 설치되어 있다.

또 다른 정자에서 볼 수 없는, 들어가는 입구에 자그마한 대문까지 있어 마치 한폭의 그림을 그려놓은 듯한,  아담한 모습을 이루고 있다.

주변에는 석축 토담이 둘러 있고 그 옆에 노암괴석이 있으며, 담밖에 뒤로 올라가면 죽파재,   괴양정이 있고, 그 위에 서석단 이란 단소가 있으나 지금은 보수 작업중이라 가 볼 수가 없다.

남평문씨 신제공파후손인 문정식(文貞湜, 79)씨는 조상들의 얼이 서려있는  균산정을 후손들에게 길이길이 전해주기위해 잘 보존되어야한다고 하셨다.

“ 균산정은 우리 부사직 할아버지(문필상)가 학문을 가르치셨던 정신을 되새기고 균산 문용현의 후학양성선비 정신을 후손에게 길이 전해질수 있도록 보존해야 하는 것이 후손들의 몫”이라고 하셨다.

균산정은 후손들이 함께 모여 조상들의 뜻을 기리기 위해 매년 4월셋째주에 시제를 모시고 있으며 시설물관리는 남평문씨 신제공파 후손들이 관리하고 있다.

이곳은 자동차를 이용하여 올수도 있지만, 각화중에서 출발하는 무돌길을 걷다가 잠시 쉬어갈수도 있으며, 대중교통87번을(문화전당에서 출발) 타고 신촌마을 입구에 내려서 걸어와도 된다.

 

출처 : 광주 북구 주부명예기자
글쓴이 : 왕ㅂlㅁrㅁr 고옥란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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